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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모두 순간이다.

by 박가신 2019. 6. 6.

나를 보면 이제야 철 드는 모양이다.


젊은 시절 모든 행동을 돌아보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에, 지금도 딱히 반성하거나 후회하고 살고 있지는 않다. 특히 우리 세대 일부가 퇴직후 우울증을 앓거나 가정적으로 고통속에

살아간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내 기억력에 의존하건데 특별히 잘한 것도 없지만 잘못한 것도 없지싶다.

몰론 내 생각이 그렇단 말이다.

그런데 그 생각에 이은 내 자위가 조금씩 무너지고 달리 판단되었다는 사실이다.

굳이 공과 사로 나누어 먼저 공적인 면을 기억한다.

그 세대들이 그렇듯이 휴가라도 가면 조직무너질 걱정에 맨날 야근에 휴일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쪼금 더 유난스러웠다.

새벽 2~3시에 야근 마친 텅빈 도로 위를 유리창 내리고 달리다보면 서늘한 밤 공기가 그렇게 좋았다.

비교적 단순하고 고루한 성격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땐 그게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직하고 청렴하게 살려 노력했기 때문에 그게 사는 낙이었다.

물론 갖은 비리에 물들지 않기 위해 엄청 고생하고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렇게 조직을 지키고 내 삶을 지켜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이었다.

내가 퇴직한 지금 조직은 내가 재직을 때보다 더 발전하고 더 빛나고 더 쌩쌩했다.

내가 그토록 밤을 세워 노심초사하던 모든 것들도 아무런 문제 없이 흘러가는 듯 하다.

조직을 바라본 내 시선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을까 싶다.

한마디로 착각은 자유다.


사적인 점에서는 딱히 내세울게 없다.

인간관계도 서툴고 평생을 버벅거리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단 하나가 기억날 뿐이다.


어느 날 과장 하나가 출근하지 않았다고 보고 받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가정문제가 복잡하다며 며칠 전부터 심각하더라고 했다.

잠시 뒤 문제의 과장이 출근해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는데 숙인 얼굴 표정이 영 아니다.

해서 따로 불러 물어보니 그제야 연유를 알게 되었다.

원래 여자관계가 복잡했었는데 며칠 전에도 바람피는 걸 들켜 이제는 별수없이 아내가 이혼하자며

법원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그집 아이들이  안면있고 부인도 알기에 "니 일 니가 알아서 하라"며 그냥 방치해선 안되지 싶었다.

어떻게 약속했냐고 했더니 오전 11시 법원 정문이란다.

지금은 어디에 계시냐고 했더니 집에 있단다.

당장 나는 그 직원을 대동하고 그 집에 갔다.

부인은 엉망인 얼굴로 내가 들어가도 본 척도 안한고 울고만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부인 앞에 다짜고짜 무릅을 꿇었다.

그리고는 "후배를 잘못 교육시킨 제 잘못이니 저를 봐서 이번 한번 만 용서해 주시라" 고개를 숙였다.

내가 나를 돌아봐도 단순하기만 한게 아니라 무식하기도 했다.

부인은 더 큰소리로 울었고, 현관 앞에서 들어오도 못하고 서 있던 직원도 울었고, 나도 그냥 울었다.

하여간 그렇게 그 직원 이혼을 면하고 그 뒤에 잘 살았던 것 같고, 어쩌다 보게 된 부인은 웃기만 했다.

훗날 그 친구는 승진도 하고 사무소장도 되더니 가끔 나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곤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사건을 간간이 떠올리며 내가 잘 한 일 중에 하나라고 기억했다.

심지어 어디선가는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어제 퇴근 길에서 말이다.

내 차가 진출하려는데 앞에서 중형 차에서 남자가 내리는데 그 친구였다.

나를 만나러 왔나 싶었지만 순간 착각이었다.

조수석에서 처음 본 여자가 내리더니 또 다른 외제차에 탑승했고 곧 떠났다.

유추해보니 내가 이 동네 산다는 걸 알턱 없는 그 친구가 외진 곳에 차 두고 바람피러 가는 게 아닐까?

내 유일한 그리고 오래 된 무용담이 한순간 무너지고 사라졌다.

이제와 그 친구의 외도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 뭐 하겠는가?

어리석은 인간일 뿐인 것을.

어제 밤 내내 생각했다.

잘하고 잘못하고 같은 것들의 개념이 흐려짐을 느낀다.

직원의 부인 입장에서 보면 당시 내가 무릅꿇고 사정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이혼해서 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거나 좋은 환경이 될 수도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쉽게 내가 잘했다고 한 것이 어느 날 잘못한 것이 되었다.


잘 함과 잘못 함. 사랑과 미움, 애정과 증오, 진실과 거짓, 긍정과 부정...

부질 없음이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다.

그러고보니 노화가 너무 빠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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