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오육년 전 쯤 되었을까?
휴가를 내고 서울까지 가서 성격유형검사에 참여했을 때 강사가 나의 유형을 단정적으로 말했다.
"거짓말 잘 하는 유형"이라고.
나는 당황스럽고 화난 표정으로 무슨 그런 말을 하시냐고 따졌지만, 강사는 미소만 지었었다.
아내는 종종 부부모임에서의 나의 발언을 문제삼아 거짓말을 왜 그렇게 잘하냐고 그랬다.
둘러대기를 잘 한다고.
임기응변에 능하다는 뜻 만은 아닌 듯 하여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늘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헛소리하는 나로서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름대로는 길게 돌아보곤 한다.
내가 그렇게 허언이나 속빈 소릴 했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명절에 만난 며느리가 내 글을 가끔 본단다.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다.
내가 아무리 솔직히 그리고 정직하게 언급한다고 해도 또 소소하거나 사소한 글이라 하더라도 하다보니
큰 건 더 크게, 작은 건 더 작게 표현하는 게 있을 터이니 말이다.
심지어 "인생 그 따위로 살면 안돼! 라며 평소 도인같은 말씀 다 해놓고, 실상 만나면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기심과 탐욕의 시애비 모습을 보임으로서 상반되는 인간상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싶다.
잠시 고민했다.
당장 내가 쓰고 싶은 걸 안 쓸 수 없고,
그렇다고 며느리를 비롯한 가까운 가족들에게 특별히 못 보게 할 수는 더더욱 안될 일이다.
결론부터 말해 나는 그냥 그대로 쓰기로 했고, 또 며느리에게 뭔 말 안하기로 했다.
나에겐 스스로 쓸 자유와 권리가 있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어떤 글이든 읽고 볼 자유와 권리가 있은 것이다.
또 내가 쓴 글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책임과 의무가 제 아무리 과중하다고 해도, 비록 글이라 칭하기엔
부끄럽고 창피한 글이라할지라도 쓰기도 전에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것은 더 비겁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더더욱 내가 내 며느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얼굴도 성도 모르는 타인, 장차 얼굴을 대면하기는 커녕
수인사도 나눌 가능성이 전무한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내 글을 감히 내 보일 수 있을 것인가!
쓰면서도 우습다.
슬쩍 간지럽기도 하고...
내가 무슨 대단한 글이라도 쓰는 것처럼 표현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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