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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분노. 불안. 그리고 화

by 박가신 2021. 10. 4.

1. 남자가 고 1학년 때였다.

여고 2학년 누님과 누님의 학교 정문이 바로 보이는 방을 얻어 자취했다. 어느 날 수학여행을 간다며 신이 난 누님은 몇날 며칠 뭔가를 사왔다가 가방을 쌌다가 풀었다 법석이다. 둘 사이가 원만하지도 않았지만 또 괜히 참견했다가 낭패를  당하거나 얻어 듣기 일쑤였던 남자는 그저 지켜볼 뿐...

그렇게 신이 나서 수학여행을 떠났던 누님이 다녀와서는 풀이 완전히 죽어왔다. 솔직히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하여간 그렇게 며칠 지난 어느 날 하교하니 아랫목에 시골의 모친께서 갑작스럽게 와 계셨다.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아들의 인사도 외면한 모친, 누님은 윗목에 쭈그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뭔가 단단히 누님이 잘못한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큰 잘못을... 방에 들어서는 아들에게 모친은 갑자기 소리를 쾅 지르신다.

"너는 속없는 느그 누님이 카메라를 빌려 가면 못 빌리게 해야지~ 가만히 두고 있었더냐?" 하셨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알 수 없지만 평소에도 기죽은 그저 죄인인 아들은 그냥 고개를 숙인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알게 되는데 기가 막힌다. 누님은 수학여행 가면서 근처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 갔는데 그걸 여행 중 잊어 버렸다. 당시 카메라는 보통의 가정에는 보급되지 않던 부유층 집안의 주요 재산일 정도로 무척 비싸고 귀했다. 당시 시내버스비 요금 90, 학생 한 달 하숙비가 6,000원이던 시절이었으니  수십만을 홋가하던 카메라는 학생 수준으로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전무한 고가의 물건이었다. 결국 사진관의 독촉에 불가피하게 모친께 고백을 했고, 모친은 변상하러 오신 참에 방문하신 길이었다.

잠자코 야단을 맞아야만 했던 아들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그 일만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노가 일었다. 심지어 길에서 사진관만 지나쳐도, 카메라를 들쳐 맨 사람만 봐도 그때의 억울함이 올라와 화가 났다. 누님이 수학여행가며 카메라 빌려 간 사실 자체를 몰랐으며, 사전에 그 사실을 알았던들 그걸 반대하거나 못하게 할 힘이나 능력이 그 아들에겐 없었다는 점은 그 아들은 물론이고 누님도 알고 모친도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음을 그는 안다. 왜 모친은 괜한 아들을 닦달하셨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은 그 일을 타인에게 발설하지도, 묻지도, 의논하지도 못하고 그냥 가슴에 묻었다. 말로 하기에는너무나 억울하고 억울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당함과 억울함에 대해 결코 납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겪은 수난의 대표적 사건으로 기억했다. 아들이 모친께 입을 닫는 첫 번째 사건이었다.

 

2. 모친께는 남동생이 계셨으니 남자에게는 외삼촌이다. 남자가 고교생일 때 그 댁에서 잠시 기거한 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자 어른이 전무한 집안 사정상 무척 따랐었다. 실제로 삼촌이지만 나이 차이도 별로 크지 않았던 외삼촌은 항암치료를 반복하고 휴양시설을 전전하시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운명하셨다. 대인관계는 좋으셨지만 와병기간이 길어지니 찾아오던 사람들도 드물어져 본인이 외롭고 쓸쓸해 하셨다.

남자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삼촌께서 평소 즐기시던 음식을 자주 대접하곤 했다. 조카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던지 어느 날 외삼촌은 "느그 모친이 왜 상속을 일찍 했는지 알고 있냐?"고 뜽금없는 말씀을 하신다.

그러니까 오래 전 환갑을 막 넘기신 모친께서 어느 날 남자에게 전화를 하셨다. "상속을 할려니 내려 와라!"며 하셨다. 관계가 소원하던 남자는 시큰둥하게 "왜 갑자기 상속 하려고 하시냐"며 물었지만 그냥 전화를 끊으셨다. 그렇게 남자는 모친과 토요일 저녁 마주 앉았다.

모친: 이번에 상속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 시행되니 이번에 상속을 하려고 한다

아들: 그래도 어머니 연세에 너무 빠른 것 같다.

모친: 내가 하자고 하는데로 하자.

아들: 그러면 알아서 하시라.

모친: 상속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

아들: 그냥 어머니가 하고 싶으신데로 하시라.

모친: 그래도 장남인 너는 너의 의견을 말해야 할 것 아니냐.

아들: 장남 의견이 왜 중요합니까? 그냥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데로 하시라니까.

모친: 그래도 너의 의견이 있을 것 아니냐!

아들: 정 그러시면 시집 간 딸까지 포함해서 공평하게 모두 똑 같이 나눕시다.

모친: 다른 집들은 큰 아들이 모두 가져가거나 아니면 반 이상 가져가고 나머지로 다른 형제들 나눈다고 하던데...그렇게 공평하게 나눠도 괜찮겠냐?

아들: 저라고 왜 욕심이 없겠습니까만, 만약 재산을 저만 가지거나 제가 많이 가진 뒤에 난중에 어머니가 연세 드셔서 거동이 불편해서 어떤 자식이든 함께 살아야 하는데 지금도 어머니와 제가 사이가 별로인데 그때 가서 어머니가 막내한테  "나는 너하고 살고 싶다!"고 한다고 합시다. 막내는 효자이니 말도 못하고 있는데, 막내며느리가 "재산을 형님에게 다 주시고 이제 살기는 저희들과 산 다니요. 못 합니다!"하면 어머니는 낭패이니 지금 똑같이 나눠야 합니다.

모친: 그래도 너는 괜찮겠냐?

아들: 그렇게 합시다.

남자가 이렇게 흔쾌히 욕심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조언도 크게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원만하지 않던 모친에게 반항의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절차를 마치신 모친은 명절에 모인 자녀들 앞에서 등기권리증을 나눠 주셨다. 다만 당시에도 넉넉했던 여동생만 제외하고 나름대로 공평히 분배하신 듯했다. 그 자리에서도 남자는 자신의 뜻과 그 이유를 분명히 말했고 상속은 끝났다.

외삼촌은 그때 모친께서 갑자기 상속을 주장하셨던 이유를 아들인 너는 알고 있는지를 묻고 계시는 것이다. 남자는 전혀 몰랐기에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왜 그리 일찍 했냐고 묻는 외삼촌께 누님이신 모친은 당시에 이렇게 말씀하시더란다.

"내가 나이들어 힘 떨어지면, 큰 딸은 안 주고 큰 아들 지 맘대로 해 버릴 것 같아서" 서둘러 했었노라고... 그랬다.

모친은 큰 아들이 상속재산을 몽땅 가져갈 것을 염려하신 나머지 당신이 힘 있는 지금 서둘렀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큰 아들인 남자가 욕심을 낼 것이라고 걱정하셨으니 모친은 큰아들을 탐욕스런 아들로 확신하신 것이다.

그렇게도 아들을 몰랐을까? 대저 당신에게 큰 아들은 어떻게 인지된 자식일까? 등등 남자는 자신을 상속재산이나 욕심내는 탐욕스런 아들로 치부한 모친을 생각하며 정확히 넉 달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에 자리에만 누우면 생각이 났다. 모친께 따질 수 있었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항의하거나 따지거나 불만을 표하는 것은 그래도 누구에게 애정이나 기대가 남았을 때 하는 것이지 않는가.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심지어 아내에게 마저도...내가 그렇게 탐욕스런 아들이라고~ 그런 치사한 아들이다! 고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왠지 자신이 모르던, 아니 감췄던 자신의 치부가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명색이 장남이면서 모친께 그런 아들로 산다는 걸 남에게 알려지는게 싫었다.

그러고 다시는 모친을 향해 웃을 수 없었다.

3. 모친께서 운명하시고  어느 기일에 형제자매들이 모였다. 어릴 때는 누구보다 가깝던 여동생이 자신을 향하던 눈길이 언제부턴가 왠지 편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렇게 서로 좋아지냈는데 이상한 일이다. 진즉 물어보려다 차일피일 하다 남자는 편하게 왜 그런지 물어봤다.

"뭔가 말 할게 있는 것 같구나~" 여동생은 망설이며 말 안 하려고 했다! ”면서 "오빠가 과거 상속할 때 여동생은 부자니까 상속하지 말자고 했다고 들었다!"며 그때 무척 서운했었노라고 한다. 황당하여 그걸 누구에게 들었냐고 하니 주저하며 말하는데 돌아가신 모친이 그러시더란다.

그러니까 여동생 집에 가셨던 모친께서 여동생이 왜 나는 상속에서 뺐냐?”농반진반 했더니, "느그 오래비가 너는 부자니까 하지 말자!"고 하셨단다. 정확하게 반대로 시집 간 여자 형제들도 줘야 한다던 남자의 의견은 삭제되고, 당신의  의견에 불만을 표시한 딸에게 당신의 뜻을 아들의 뜻으로 왜곡하고 변질시켜 결국은 매도한 것이다. 남자는 분노했지만 조목조목 설명해야 했다. 그러고는 "대부분 안 팔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재산을 주겠다!"는 말을 해야 했다. 여동생은 20년 이상 품고 있던 오해가 풀렸다며 웃었지만 남자는 웃지 못했다.

모친은 아들을 향해 웃지도 않으셨지만 아들을 웃을 수 있게 하지 않으셨다.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외면받고 비난받던 남자가 훗날 여자를 만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애틋한 애정을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남자는 평생토록 남의 시선에 힘겨워하며, 항상 부족한 자존감과 과잉된 자존심에 전전긍긍하며 또 고통받으며, 늘 사랑받기를 갈구하고 가슴 조리며, 관심과 애정에 목 말라 연명하는 미약한 존재로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남자는 늘 최선을 다했다. 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희망했다. 그리고는 "나 여기 있어요!, 나 좀 봐 주세요!" 애걸하면서 말이다.

운 좋게 하느님을 만났다.다행스럽게 곁에 좋은 여자도 있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세상의 어떤 개체도 어떤 인물도 그 어떤 것으로도 어머니의 애착 형성을 대신할 수 없음을 이제 안다.

어머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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