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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부인. 억압

by 박가신 2021. 7. 21.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시간내서 함께 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다.

사교성이 별로인 나로서는 여간 감사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에도 뭘 좀 알아봐 달라했더니 "그 동네가면 우리 중학교 동기가 있다"며 미리 만날 약속까지 해 놨단다.

그러면서 오랫만에 만날 동기 이름을 말하는데 기억에 전혀 없다.

속으로 생각했다.

늘 그렇듯 기억에 없더라도 반가운 표정 지으며 만나면 되겠지...

벌써 55년 전 정도의 일이니 기억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동기가 나와 있었다.

주차를 시키면서 친구얼굴을 슬쩍 봤지만 기억이 안 난다.

집 앞에서 기다리던 친구는 차에서 내리는 나를 웃는 얼굴로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미안하지만 기억이 잘 안 나네. 그래도 반갑네...

친구가 답 했다. 

그럴 수 있지. 너무 오래 전에 만났으니... 그럴 수 있어... 그런데 나는 금방 알아보겠는데...

나는 전혀 기억에 없어 어정쩡쩡하는데, 친구는 나를 단번에 기억하며 어깨를 감싸며  반갑다 하고..

 

함께 막걸리를 먹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월출산 올랐던 이야기가 나왔다.

막걸리에 취한 탓인지 산 타는 건 딱 질색이면서 왕년엔 월출산 등반대회서 2등 난 자랑질을 했다.

그 말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가만히 웃으며 말한다.

"자네가 2등 날 때 나랑 같은 조 였어!"

중학교 시절 우리 집에 놀러 올 정도로 친했고 재대 후에도 만난 적 있었다면서 말이다.

 

가끔 이지만 고향 조문길이나 혼삿날 만나는 친구를 만나면 나는 처신하기가 힘들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해서 도합 9년을 고향에서 살았지만 기억나는 친구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니 말이다.

종종 얻어듣는 것이 친구도 못 알아 본다고.

잘못하면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고도 듣는다.

하여 그런 자리에 가면 늘 의도적으로 환히 웃으며 누구든 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엄청 친한 척을 한다.

내가 당시엔 무척 소심한 성격이었기 때문이구나, 혹은 고향에 자주 안 가서 잊어버렸구나 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하니 그게 아니구나.

건망증이 있어서도 아니고, 소심해서도 아니고, 자주 못가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시절이 죽을 만큼 싫어서, 그 때가 너무 힘들어서 내 스스로 그 시절을 부인하고 억압하고 억제했기 때문이구나.

무의식의 창고에서 그것들은 오랫동안 방치되고 숨 죽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그냥 삭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티기 힘 들던 순간들을 내 기억에서 감추는 대신 내 어린 시절이 몽땅 날라간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은, 누구에게라도 감추고 싶었던 상처로 인해 내 어린 친구들이 희생되었구나.

내 어릴 적 시간이 말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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