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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내 방식대로 살아온

by 박가신 2019. 4. 4.

세상 이치대로 살아 낸다는 건 결코 쉬운게 아니지 싶다.

특히 대인관계나 인간관계에 부실한 나는 특히 어렵고도 힘들다.


내 아이들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다소 애터지거나 무능한 직원(?)"을 대하면 느그 부모도 고생께나 했것다! 등

험한 생각도 했었지만, 막상 내 아이들이 공부를 마칠 때 즈음엔 내 경솔함을 자책하면서,

또 취직해서 직장 생활하는 젊은 애들이 그렇게 대단하고 대견하기만 했다.

어떤 입장에 있던 내가 다른 입장에 달리 서니 내 판단도 내 결정도 달라지더라는 점이다.

이러니 어떤 상황에 대해 사소한 생각까지도 세상의 이치는 크던 작든 늘 존재하는 듯 하다.


전 직장에서 퇴직하기 전에도 늘 넉넉함 보다는 쪼잖하단 소릴 들어가며 검소검약하고 살았지만,

요즘의 내 씀씀이는 즉각 아내를 당장 힘들게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보다는 더 신경쓰인다.

그래서 생각나는게 축,조의금이다.


경조금을 사람마다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이가 내 아들 혼사에 얼마 했는지 꼼꼼히 기록해 뒀다가 반드시 그 금액을 돌려주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얼마를 했든 그 사람을 보고 또 지금의 내 형편을 감안하여 그냥 한다.

그러니 그 명부를 참고는 하겠지만, 얼마를 받았으니 얼마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그를 위해 주고 싶은 만큼 주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선배에게 배운 덕분이다.

이처럼 어디서 뭐든 세상이치는 분명하기만 하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늘 체면과 면목에 얽혀 산다.

그가 얼마했으니 나도 어떻튼 얼마를 해야한다는 마음가짐이 잘못되었다거나 오류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여기서는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하는 것이 무엇보다 현명하지 싶다.


돌아보니 나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 왔다고 생각한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내가 원하는데로 내가 옳다고 판단한데로 밀어부치며 살아왔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난과 질시. 때론 넘어짐, 그리고 왕따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별로 후회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세상 이치대로 살아 온 걸까?

아니면 부정하며 산 것인가?

조심스럽게 나는 스스로 장담한다.

내 방식대로 산 것이 곧 세상의 이치를 따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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