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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둔주포

by 박가신 2020. 1. 2.

오랜만이다.

고향집에 갔다가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곳이 어딜까?"생각하다가 떠오른 곳이 "둔주포"였다.

해남군 계곡면 덕성리의 둔주포!

출발하기 위해 도로를 검색하면서야 그곳 지명이 "둔지포"가 아니라 "둔주포"였다는 걸 알았다.

그 긴 세월동안 바뀔 수도 있었겠다.


그 동네에 둘째 고모님이 사셨다.

(물론 진즉 타 지역으로 이주하셨다)

내 부친께서는 아래로 세명의 여동생이 계셨는데 그분 오누이의 정이 무척 두터우셨다고 한다.

특히 둘째 고모님은 얼굴 모습도 부친과 너무도 닮은 나머지 우리도 고모님을 더 따랐고, 고모님과 함께

마음씨 착한 고숙께서도 우릴 정말 아끼고 이뻐해 주셨다.

그 덕에 방학이 되면 고모님댁에 가서 열흘이고 보름이고 놀다가 오곤 했다.

물론 고모님의 자녀들도 우리 형제들과 나이들이 같거나 비슷해서 함께 하기가 더욱 좋았다.

그때는 방학만 되면 으레 가는 걸로 알았으니까.


당시 60년대 만 해도 둔주포에는 5일장이 꽤 크게 열렸다.

특히 생선이나 어폐류가 주류를 이룬 시골장이었으니 주변에 가게나 주택들도 상당했었다.

고모님는  식당을 하셨다.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고깃국이나 고기요리를 먹는다는 건 무척 드물었던 시절에 고모님은 우리 형제들에게

거의 날마다 고기반찬을 해 주셨던 것도 고모님 댁 방문을 즐기던 또 다른 이유였다.



둔주포 사거리다.

사진의 오른 쪽에 미암쪽으로 가는 다리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다.

영암에서 해남행 버스를 타고 성전을 거쳐 계곡면에서 하차한 뒤, 계곡천이라는 냇가를 따라 한 십리 넘게

걷다보면 둔주포  삼거리가 나온다.

겨울방학 때 아이 걸음으로 십리를 걷는 것은 멀고 춥고, 바람도 거칠었다.

승용차로  5분여 걸린 길을, 그때 어린 동생들과 함께 한 두시간 쯤 강변을 걸었으니 얼마나 고역이었겠는가.

이번에 보니 넒디넒은 영산강이 코 앞이었으니 추운 갯바람이 상당했으리라...

지금은 집 뒤의 강물은 바짝 말라 갈대만 무성하여 고양이들 세상이다.


번성하던 시장은 이제 없어진 듯하다.

정미소도 없어지고, 자전거방도 없어지고, 만화방도 없어졌다.

지금도 가까운 곳에 농협도 있고 상점도 있으나, 당췌 손님도 주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아예 지나는 사람들이 없다.

그때처럼 추운 바람도 없는데 말이라도 걸어볼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방학 때만 되면 나를 기다렸다는 동네 여학생도 찾을 수 없다.



나와 친했던 동갑짜리 사촌은 먼저 하느님께 갔다.

저 집에 오랫동안 사셨고, 나와 내 형제들을 끔찍이도 이뻐해 주시던 고숙께서도 물론 가셨다.


두어시간 쯤 저 길에서 서성거리고 기웃거리던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하기야 알 턱이 없겠지.

그 여학생이나 알아볼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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