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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아버지 노릇

by 박가신 2020. 3. 17.

지금까지도 아내에게 비난받는 여러 행실 중 "아버지 노릇"을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크다.

나로서는 일언지하 그저 할 말이없다.

딴 건 몰라도.

 

직장이 나 없으면 밤 사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양 토요일이나 일요일까지 야근하기 일쑤요,

맨날 늦게 오는데다가 와도 밤 늦도록 술 먹고 오는 날이 태반이고,

모처럼 집에 있는 휴일이면 오전엔 침대, 오후엔 소파와 한 몸이 되어 그저 잠이나 퍼 자는,

그러다가 드물게 아이들과 식탁에 마주앉게 되면 이것저것 캐묻고 야단치기 일쑤인,

심지어 자기 맘에 안 든다고 쥐어박기나 하는...

그런 아버지였으니 말이다.

 

보다못한 아내는 어느 날 "좋은 아버지학교"라는 곳에 강제 입교를 시켰다.

나로서는 많은 회한의 시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40년 인생 잘못 살았구나는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처음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잘못은 반복 했겠지만.

이후 뭔 교육을 받거나 책을 보거나 아니면 도사님의 말을 듣게 되면 아이들에게 사과의 말을 종종하곤 했다.

특히 내 잘못을 보고 자란 내 자식들이 훗날 즈그 아이들에게 잘못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될 때마다

조심스럽게 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를 보면서는 "내 아이들도 이처럼 사랑스러웠을 터인데 왜 그때 몰랐을까?"한다.

속 모르는 아들은 "에이~  또 그 소리하시네" 한다.

 

요즘 들어 심리 공부를 하다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나는 왜 그런 잘못을 했을까?

내 잘못이지만 무엇이 나를 그런 잘못으로 빠지게 하는 원인이 있었다면 뭐 였을까?

자칫 내가 아닌 남의 탓이되거나 변명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늙어가는 나를 위해서라도 분명히 해야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가 "아버지 노릇에 대해 아는게 없다"라는 것이다.

어릴 적 부친을 여의고 중학생 때 까지 모친 슬하에서 지내다, 고등학교부터 가까운 도시로 유학가서 지금에 이르렀으니, 딱히 "보거나 듣거나 익힌 것 등" 배운 기억이 없다.

부친께서 3대 독자신지라 명절 같은 집안 행사 때는 늘 고모님과 고모할머니만 계셨을 뿐이고, 심지어 모친과 손위 누님, 바로 밑이 여동생인지라 굳이 가족구성을 "성별"로 구분하면 주위엔 온통 여자들 뿐이었다.

 

해서 나에게 학습된 것 하나가 아버지뻘 남자들을 심하다싶게 믿고 의지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녹녹치 않은 세상이라 그런 아버지뻘 남자들에게서 적지않게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말이다.

당연히 그들에게서 남자노릇, 조직, 강함, 인내심, 의리 등등에 대해서 알았을 뿐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그런것만 잘하고 살면 차자식도 가정도 무탈하게 잘 되리라 했다.

 

지금 돌이보니 가장 안타까운 것이 "아버지로서의 인자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너그러움은 고사하고 따뜻함에 대해서도 일자무식이었다는 점이다.

억지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험한 군입대를 위해 비닐 손가방하나 달랑 들고 길 떠나는 아들을 인근에 있던

정류장도 아닌 집 앞에서 "잘 다녀와라!"시며 묵묵히 쳐다 보시던 모친에게서 나는 "악착같이 살아남는 것"을 배웠고, 훗날 결혼식을 앞두고 "장가갈려니 돈 좀 주시라~"는 내 조심스런 요청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 단다~"하며 거절하시던 뒷 모습에서는 "차갑고 정없는 검소와 절약"만을 배웠을 뿐이다.

 

물론 그때는 "나는 저렇게 안 해야지 "했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 학습이 되었고 훗날 내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스스로도  내 아이들을 강인하고 굳건하게 키우려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그걸 실행하는 방법과 의도하는 자세나 마음이 틀렸다는 것이다.

 

고로 나는 지금도 후회하고 반성한다.

해서 장가 간 아들에게 "나처럼 하면 안된다"고 하는 뜻에서 자꾸 뭔 말을 하는데 그게 맘에 안드는 모양이다.

그만큼 후회했기 때문에,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말이다.

그럴때면 "그래~ 니 자식 니가 잘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그게 아니다.

하긴 요즘 애들은 지혜롭고 이성적이니 잘 할 것이고, 또 한편으론 나를 좋은 반면교사로 삼았을 터이니...

 

희망사항이 더 늘었다.

손주들에게 "인자한 할아버지"소릴 듣고 싶다.

문자 그대로 희망이다.

 

 

두달 전인가... 원효사에서 본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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