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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비둘기와 인간

by 박가신 2020. 5. 8.

언제부터가 베란다 구석에 설치된 실외기 박스틀에 비둘기들이 앉아있곤 했다.

비둘기든 까치든 일부러 쫒아 낼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둿지만 문제는 "똥"을 싸댄다는 점이다.

그걸 치우려면 아파트 밖으로 몸을 내밀어 물을 뿌리고 빗자루 같은 걸로 치워야 하며, 더 큰 문제는 어떻게들 싸는지

유리창이나 방충망까지 똥이 튀어 여간 귀찮고 싫었다.

 

해서 보일 때마다 소리 질러 쫒거나 막대기를 휘두르다가 급기야 새총까지 만들어 왕년의 실력을 발휘했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명중시키지 못했으니 그 또한 실패했다고 할 것이다.

하여간 우리 집에선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비둘기였다.

(부화기간 같은 정보와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 해보니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유해 조류로 인식되어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비둘기들이 앉을 만한 자리를 사전에 없엘 방편으로 실외기 구석구석마다 빈 화분이나 물을 채운 피트병을 놓고서야 "이젠 안 오겠지" 했다.

 

그러니까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정확히 4월 4일 오후, 틀 위에 앉아 있는 딱 봐도 여느 비둘기보다 기가 센 듯한 놈이 앉아있는데, 유리창을 확 열어 내 쫒고 바닥을 보니 연한 색깔 비둘기 한 마리가 도망을 안 가고 있는게 아닌가.

막대를 휘둘렀더니 그제서야 미적거리며 도망을 가는데 앉아있던 자리엔 가느다란 나무가지가 수북했다.

해서 애들이 집을 지으려나 싶어 막대를 이용해서 나뭇가지를 긁어 버렸다.

그랬는데 다음날 꾸룩꾸룩 소리가 계속되어 문을 열어 그 자리를 보니 어제 그놈이 다시 앉아 있는게 아닌가.

나뭇가지를 다시 수북히 물어다 놓고 그 위에...

이것이 겁을 상실했구나 싶어 막대기를 또 휘둘러 쫒아버냈더니 그 자리엔 "작고 노란 알 하나"가 있는게 아닌가.

 

그러니까 어제 틀 위해 폼잡고 있던 놈이 숫놈, 그 사이 암놈은 알을 낳았고, 나의 방해로 두놈 도망가고 알만 남았구나.

아내는 불쌍하다며 주방에서 마른 행주를 가져와 나뭇가지 위해 깔고 알을 그 위해 올려놓았다.

언제가는 암놈이 돌아와 품겠지 싶어서.

아니나다를까 얼마안가 내다보니 돌아온 암놈이 알을 품고 있는데 내가 문을 열고 사진을 찍어도 도망갈 기세가 아니다.

인제 알도 낳았는데 니가 나를 쫒아 낼수 있냐 싶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런데 바닥을 보니 아내가 깔아준 마른 행주는 구겨 버린 듯 구석에 치워져 있다.

하여간 그렇게 나의 호기심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암놈 비둘기는 알을 품고 있었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부화는 15~18일이 걸린다고 해서 너무 길게 간다 싶어 조금 짠해 뭘 좀 줄까도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며칠 전 아직도 뭔가를 품고 있는 비둘기를 보면서 "죽은 알을 품고 있는게 분명하다" 싶어

아침엔 먹이를 찾아 둥지를 뜬다고들 해서 내다보다가 오늘 이걸 봤다.

새끼를 부화했는데 한마리가 아닌 두마리다.

그런데 한마린 크고 또 한마린 무척 작다.

유추해보니 내가 알을 낳고 있는 도중에 암컷을 쫒아 보냈고, 방해꾼이 없어지자 다시 돌아와 알을 낳았으니 결국

출산일이 다른 새끼들이 다른 덩치로 크고 있었던 것이다.

유해조류라 하더라도 그분께서 만드신 피조물 아닌가 싶어 커서 떠날 때까지 그냥 두려했는데 이젠 측은까지 하다.

아내는 그들이 떠난 자리 치우는게 지금부터 걱정이라지만 말이다.

 

비둘기 탓 할 것이 아니다.

비둘기를 유해조류로 잘 못 키운건 우리 인간이다.무슨 대회한다고, 무슨 축제 한다며, 의도적으로 많이 배양하여

인간하고 더불어 살 만한 개체수를 무시하고 촤과 개체를 살게 한 인간의 잘못이다.

맘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개체수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괜한 생각도 든다.

오늘 이 땅에서 우리가 주로 하기 싫어하는 육체노동하며 살아가는 동남아 사람들에게 함부러 하지 말라며,

과거 막노동 하러간 일본땅에서 우리 사람들이 왜놈들한테 지독한 차별과 무시를 받는단 말을 듣고 우리는 또 얼마나

원통해 했는가를 지금 기억하자던 어떤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얼마전 몹쓸 병을 가진 자식을 더 이상 케어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자식의 목을 조른 어느 늙은 어머니가 생각난다.

우리 이웃들은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나 하며 댓글을 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질병에 노출된 자식을 늙은 어머니가 아니어도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적 제도나 장치가 준비되어 있으면 어느

어머니가 자식의 목을 조르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투표 잘해야 하는 것이다.

투표하면 밥이 나오고 떡도 나온다.

그래야 우리 모두는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 땅에서 병든 자식 목 조르는 늙은 어머니를 지켜 보지 않아도 된다.

그리 간단한 걸 모르고...

 

오늘따라 말이 왔다리 갔다리 한다.

며느리도 딸도 용돈을 보내 온 어버이날이라 다소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