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나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많이 더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말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를 나만의 단어나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나 스스로는 그 이유나 원인에 대해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 알게 된 지식으로 언어를 익힐 시기인 유아기 때 언어를 학습해 줄 부모나 부양자의 부재 또는 부족이
가장 큰 요인이었음을 안다.
한 살 터울인 누님이 안타깝게도 당시 유행이던 "소아마비"에 걸리는 통에 이를 치유하고자 전국을 헤매셨을 부모님은 시골의 당신들 부모님께 맡기셨고, 인자하시던 조부모님은 3대 독자집 장손을 그저 애지중지 하셨음은 불 보듯
뻔하였으니, 내가 말을 오랫동안 익히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기로 꽤 성장 할 때까지도 더듬거리거나 빨리빨리 말하는 것을 특히 못했다.
말 하는 것이 부진하다보니 말을 듣는 것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말하는 것 이외에도 외형상 드러나는 다른 것들까지도 미진하거나 부족한 걸로 비춰졌을 것이니,
교육에 열정이 남다르셨던 모친은 심려가 엄청 크셨으리라...
그러나 부족한 인간이 그렇듯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대비책이나 보완책이 내게 학습되었다.
우선 말 할 때 급하게 않하다보니 자연스리 말로 인한 손해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물론 내 생각임).
하긴 못하니 안하게 된 것이지만...
안 해야 할 말을 해 버리거나, 잘못된 말을 하게 되거나, 또는 상대가 듣기 싫은 말을 중언부언하는 일이 드물다.
웃기는 것은 내 속을 모르는 사람은 "말을 지혜롭게 한다거나, 신중하다거나, 차분한 성격"이라 한다.
다소 심할 정도로 긴 시간 생각해서 하다보니 심지어 "말을 정말 잘 한다!"라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아내는 이 부분을 극히 싫어한다.
사소한 논쟁을 벌리거나 언성이 높아질 만 하면 나는 말을 안 한다.
아니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고 해야 옳다.
아내는 말을 주고 받고 해야 할 만하면, 말 안하고 그저 듣고 있는 나를 보면서 고의적으로 말을 안 한다고 화를 낸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보는 것이다.
결코 내가 아내를 무시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대꾸하지 못하고, 할 말을 나름대로 궁리하고 있는 상태인 것을.
문제는 또 있으니 말을 긴 시간 궁리해서 하다보니 나름대로 철저하거나 완벽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상대로 하여금 더 이상 갑론을박할 일 없도록 정확하게 하다보니 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를 싫어한다.
말이 다소 다른 딴 곳으로 흘렀다.
하여간 원만히 말을 하지 못하거나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단점과 함께 또 다른 문제는 "말귀"에 어둡다는 점이다.
더불어 "눈치"가 없다는 뜻이다.
공감과는 또 다른 능력인 눈치가 나에게 아예 없기야 하겠는가만 많이 부족하다보니 가끔 눈총을 받곤 했다.
남들 일어서야 할 때 앉아 있거나, 반대로 앉아 있어야 할 때 뜬금없이 일어서는 일.
대부분 사람들 입 닫고 있을 때 말 하거나, 다들 말 할 때 입을 닫아버리는 일.
누군가에게 환한 미소 보낼 때 웃지 않고 노려보거나, 다들 누군가를 냉담하게 대할 때 혼자 반가워하는 일 등등...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언행을 조심하는 소극적 행보를 하려고 고심한다.
이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내 수법이자 살아남고자 하는 방책이다.
며칠 전 아내와 나는 최종적으로 의견을 매듭지었다.
나는 "4.5%" 부족한 인간이라는 점을.
우리는 가끔 소수의 사람을 가리켜 "2% 부족한 사람"이라 칭하는데 나는 그 보단 조금 심하고, 5% 까지는 아니고 해서.
처음엔 장난삼은 말이었는데 나 스스로도 그 정도는 부족하단 사실을 인정하고 인식하니 솔직히 말해 편해진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부족한 점이 계속 생각난다.
신체나 운동 능력도 부족하고, 지혜로움이나 명석함도 그렇고, 심지어 재산 모으는 능력까지 변변한 것이 없구나.
그러나 세상은 나 처럼 4.5% 부족한 사람도 있고, 또 2% 부족한 사람도 있어야 잘난 사람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저 감사할 일이다.
더 부족했으면 어쩔 뻔 했는가.
오늘 7월 12일 비오는 밤이다.
내일이면 내가 좋아했던 그 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
조금 일찍 가는 것이려니 한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을 고생한 내 누님과 동갑인 그 분은 그래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부디 좋은 데로 가시길 기도한다.
잘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