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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부끄럽지 않기

by 박가신 2020. 7. 31.

연말이 다가오던 어느 날 최고경영자가 시찰왔다.

사무소장이던 나와는 평소부터 결코 우호적이지 않던 분인데 왠일인지 무척 살가운 표정을 하고서,

출입문을 들어서부터 나와 직원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그날따라 내외를 여기 저기 둘러 본다.

잠시 뒤 내 방에 앉아 차를 들면서도 최근 실적과 그간의 경영성과를 들어 내내 칭찬하던 그 분은 말했다,

"이 점포를 확장하라"고...

이어 세세한 공사 내역까지 열거한다.

 

당시 점포는 자 건물이 아닌 임차 건물로 계약기간이 한 1년 쯤 남은 시점에 있었다.

그런데 건물이 너무 노후되어 보수할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닌지라 우리는 물론이고 본점 책임들까지도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아예 인근에 땅 사서 건물을 신축하던지, 아니면 새로운 건물을 물색하여 임차하던지,

부득이하게 기존 건물을 사용할 거면 1~2년 정도 건물주에게 이주한다고 해서 유리한 연장을 해야 하는 차에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최고경영자가 "내년 사업계획에 공사비를 책정하여 내년 봄에 바로 확장공사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사업계획서에 책정할 내용과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말이다.

내심 해당 점포 사무소장인 내가 건의하는 모양세로 공사계획을 추진토록 말이다.

(당시 건물주는 최고경영자와 친밀한 관계임을 공공연히 내세워 임대금액을 올리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고, 유사한 방법으로 공사를 발생시켜 공사비의 일정액을 수수했다는 소문도 있던 시절임)

 

그 분은 자신의 뜻을 직접 관철시키기 위해 직접 나를 찾아 왔던 것이다.

본점의 누군가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확실하게 직접 지시하면서도 또한 내가 건의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했어야 했다.

잠시지만 상상을 했다.

향후 내가 겪게 될 수도 있는 불이익이나 해쳐나갈 현실에 대해서도 말이다.

정년을 몇 년 남겨둔 나로서는 정말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건물이 너무도 낡고 노후되어 공사금액이 과도하며, 더구나 우리가 부담하기엔 불필요한 예산 지출로 보이며,

이 정도 임대차 금액이면 인근에 신축건물로 갈 수 있다는 점,

내년 사업계획서에 공사계획에 수억을 책정한 걸 건물주가 알게되면 나중에 공사하든 안하든 우리가 절대 불리하단 점,

지금 우리의 경영 여건상 임차건물에 그런 금액을 투자한다면 잘못이다는 점. 등등 ..."

 

그 분은 몇 마디하고 자리를 떴다.

다음 날 본점으로부터 "사업계획서를 위한 공사건의서"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야말로 어제의 내 의견을 무시하고 당초 그 분의 뜻대로 밀어부치겠다는 말씀이다.

여차하면 공사가 추진될 수도, 그 책임 또한 내가 져야 할 순간이라고 봤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고 그를 생각했으니까.

 

확실하게 해야 할 시점이었다.

건의서를 보내긴 했다.

다만 그 분이 말한 수억이 아닌 수백만원으로 우리 점포 차원으로 보수를 하겠다는 "자체 계획서"를 정식으로 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5개월 뒤 인사명령으로 나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했다.

당시 정년 2년 남기고 말이다.

물론 그 부당함을 주장하여 "법"을 통해 원대복귀 했었다.

이후 듣자니 나같이 부당한 인사명령은 다시는 할 수 없도록 제도화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적고는 있지만 몸 담았던 조직이 드러날까 조심스럽다.

부끄러운 과거니 말이다.

내 젊음을 보낸("바쳤다"는 표현은 남사스럽고) 직장이 이럴 수 없다며, 혼자 쪽팔려 하기도 하고 기막혀도 했다.

 

훗날 기억해보니 안타까웠던 점은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퇴임을 앞 둔 그 분의 유사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였을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칭찬과 격려의 말들이 난무했었는데, 막상 인사명령이 떨어지자

대부분의 동료들은 슬그머니 외면했다.

인사권자의 폭력 앞에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외면한 것이다.

(무서웠겠지. 지들도 다칠까봐.)

그들은 부당함에 "동조"한 것이리라.

 

당시 내 행위가 국가나 사회를 위한 정의나 또는 공익을 위한 선행은 아닐지라도,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한 저항의

행위라고 자위하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 분의 속 보이는 부도덕함을 눈 딱 감고 수용했더라면...

얼마남지 않은 기간 편한 마음을 가지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더라면...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라며 허허 거렸더라면 훗날 그 날을 돌아보는 나는 말이다.

 

실은 심각했다.

나로서는 중차대한 사건을 접한 것이다.

결코 쉬운 행동도 아니었다.

남들은 쉽게 판단하고 단순하게 결정 할 수 있는 일 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어려웠다.

 

이제보니 내 결정으로 인해 손실을 예방하였음을 그 조직이나 그 조직원들은 기억할까 싶다.

세월이 약인 것을... 하면서도 혼잣말을 한다.

부끄럽지 않게 살려 했노라.

 

 

 

               비 온 뒷날 내 고향 월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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