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일본의 도발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개념없이 일본을 동경하기도 하고 또 자주 가기도 했다.
이삼십년 전 연수나 출장을 다녀 올 때면 동료나 직원들 심지어 아내와 아이들을 붙잡고 일본의 국가나 질서의식 또는 공중도덕이나 배려심 같은 것에 대해 열 올려 칭찬하기 바빴었다.
물론 그때도 그들의 만행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늘 "그것은 그것이고..."하는 쉬운 생각으로 말이다.
그들의 본래 모습인 "야만과 탐욕"을 보기 전 까지 말이다.
또 어릴 적 나를 사로잡던 수많은 천재 작가들과 빛나던 그들의 작품을 기억한다.
이광수. 장지연. 유치진. 정비석. 안익태. 모윤숙...
그리고 국화 옆에서 서정주... 모가지가 길어서 노천명... 심지어 자랑스런 독립선언문의 최남선 등등
이완용이니 박정희니 김성수니 방응모니 백선엽이니 김창룡이니 하는 자들까지는 거론하지 말자(정신 사납다~).
책 읽기를 유난히 좋아 해 밤 마다 이불을 둘러쓰고 책 읽다가 어른들께 혼 난 적이 다반사였던 시절,
천하에 없는 민족의 반역자 였음을 알게 된 어느 훗날 그들의 흔적들을 싸그리 버림으로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친일"의 뜻은 일본과 친하다 라는게 사전적 뜻이겠지만 그것이 단순히 친함을 뜻하지 않음은 우리는 잘 안다.
"부일"은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하다라는 뜻이니 일본의 침략행위에 찬동하고 적극적으로 도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까 먹고살기 위해 칼 든 왜놈들 앞에서 일장기 한두번 흔든 정도를 말 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적극 찬동하여
돕거나 그들을 이롭게 한 행위자들을 친일이나 부일이라 하겠다.
오늘의 양분된 이념적, 계층적, 구조적인 갈등의 원인을 해방 이후 친일행위에 대한 청산을 명확히 하지 않았음의
원죄에서 찾는 이들도 많다.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해방 이후 친일파 숙청을 목적으로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처벌을 위한 "반민특위"가
결성되었으나 오히려 되치기 한 이승만과 그의 수족들의 폭거로 물거품되어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세월이 약이듯 사람들은 아픈 사실일수록 쉽게 망각하려 하거나 또 실제 망각들 한다.
또 대부분의 당사자는 죽었고 지금도 죽는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뭔가를 해야 한다.
누구를 쳐 죽이고 목 메달자는 말이 아니고 또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모든 사실을 공개하고 반성하고 함께 깨우치자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반민족행위자 천여명의 명단을 공표하거나 인명사전을 만들어 후대에 기록하고자하는 노력이 이어진다.
언제나 처럼 의도하지 않게 말이 간다.
친일에 대해서 왜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니 이제라도 청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이다.
어느 힘 있는 권세가에게 장가 못가 안달난 아들 놈이 있는데 마침 동네에 적령기에 든 처녀 셋이 있었다고 하자.
공교롭게도 세 처녀 모두에게 흑심을 품은 총각이 심한 성폭력 행위와 수작을 벌렸더니,
첫번째 처녀는 집안 망신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그만 자결을 했고,
참혹한 그 모습을 본 두번째 처녀는 잘못하면 몸을 더럽힐 수 있다는 생각에 타향 땅으로 이주했지만,
마지막 세번째 처녀는 뭔가 달랐다.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뜻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겐 욕망이 있었다.
당연히 청혼을 받아들였고 종종 남편을 닮아가 사람들에게 폭력도 갑질도 하며 장사도 해서 큰 돈도 벌었다고 하자.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힘있는 권세가라던 그의 애비는 원래 힘없는 자를 괴롭히고 등쳐먹던 흉폭한 자임이 밝혀졌고, 그와 그 아들 놈은 야반도주를 했다고 치자.
동네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도망간 권세가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마을회관에서 상의를 해야했다.
부끄러움에 자결해야만 했던 처녀에겐 어떻게 해 줄 길이 없어 기가 막히지만 그냥 기억만 할 수 밖에...
둘째 처녀도 이미 이주한 동네에서 터잡고 살기 때문에 조금씩 도와주는 것 말고 해 줄 것이 없다. 다시 온다면 모를까...
문제는 세번째 처녀다.
시아비와 남편은 도망갔지만 그녀에겐 지켜야할 자식들과 재산이 남았기에 새로 부임한 권세가와 야합한 그녀!
동네사람들은 세번째 여인을 단죄해야 하는가! 아니면 없었던 일처럼 눈 감고 입을 닫아야 하는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아니 역사를 거론 할 것도 없다.
내 누님이, 내 여동생이 첫번째와 두번째 처녀였다면 나와 내 형제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상하면 간단히 정리된다.
또한 2차대전 후 프랑스의 준엄한 처단,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추적 등등은 그 민족 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후손들이
미래에 자행(?)할 수도 있는 반역행위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 나라?
친일에 대한 단죄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누구나다 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안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이 아니듯" 아는 만큼 실천에 옮기는 것은 선이며, 당연히 알고도 행하지
않음이야 말로 악이다.
그리고는 당시 끝내기 못한 척결, 처벌하지 못한 후유증과 그로 인한 고통을 지금도, 그리고 먼 훗날까지 겪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본 내용이지만 친일행위자들에게 왜 그랬냐!(친일행위의 이유)고 물으니 이랬단다.
'왜놈 세상이 영원할 줄 알았다'...
여기서 결과론적인 사고가 나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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