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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by 박가신 2021. 1. 26.

오랫 만이다.

작년말 어떤 자의 짧은 댓글에 속이 상해 쓰고 다시는 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글이 지 맘에 안들면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이니 말이다.

딱 봐도 나이먹은 티 나는 사람의 일기같은 글에 굳이 비아냥거리는 외마디를 적는 모양세에 영 불쾌했다.

 

그런데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가 그런 행위를 한 것은 어쩌면 그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갖는 구조의 틀,  또는 그의 부양자들의 오류나 부족함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렇게 성장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인데 그를 탓해 뭘 하겠는가 싶다.

 

각설하고.

작년 겨울부터 새로운 봉사를 시작했다.

노숙인 식사제공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관내 교구에서 봉사자를 구함을 보고 지원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조리팀에서 일을 한다.

이제까지 머리로 입으로만 했었는데 이제 몸으로 봉사 해야겠다는 생각(멀쩡한 신체로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에 상상하기를 앞치마 걸치고 식사 준비해서 배식하고 그리고 뒷정리를 하겠지 했는데,

조리는 자매님들이 하고 저녁밥으로 국물이 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그분들에게 전달한다.

나는 고작 양파나 대파를 다듬는 것이 전부이며 가끔 간을 보기도 한다.

물론 도시락과 함께 마스트, 핫팩, 떡이나 빵 등등도 함께 동봉한다.

다음 날 아침과 점심도 굶지 마시라는 뜻이다.

 

근데 막상 첫모임에 가보니 구성원들이 모두 여자 분들에 달랑 나만 남자였다.

늙그막에 여자들 틈에 끼는게 싫어 바로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아내는 해 보라고 권유한다.

하여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임무 중에는 중요한 것도 있다.

큰 찜통 두 개를 트렁크에 싣고 꽤 먼 길을 달려가 국물을 기증하는 식당에 가서 기증받아 오는 것이 중요한 임무(자매님들은 하기 어려우니)다.

큰 솥에서 우려낸  뼛국물을 덜어주는 착하디 착한 국밥집 사장님에게 고개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뜨거운 국물이 든 크나 큰 스덴통들을 낑낑거리며 도로변에 세운 차량 트렁크에 싣고,

이동 중에 국물이 흔들리고 통이 넘어질 수 있으니 통을 밧줄로 동여 멜 때면 솔직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점차 숙달되고 있다.

이 국물이 누군가에게 겨울 한기를 녹이는 저녁식사가 될 터이니 말이다.

기대하고 기원하기를 나의 수고가 누군가에게 잠깐이라도 행복을 주지 않을까 한다.

 

해가 바뀌고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세상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갈수록 드는 시간이다.

오늘 저녁에는 아내에게 설 날 선물로 줄 시집을 주문했다.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이상한 계절이 왔다"고 노래한 존경하는 문정희 시인의 시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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