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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덕수궁, 기억과 진실.

by 박가신 2021. 4. 20.

혼례가 있어 서울에 갔다. 아이들이 마련한 숙소가 시청 주변이라 일찍 도착해서 이곳저곳을 다녔다. 여전한 덕수궁에는 진달래와 작약과 모란과 라일락 등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오랜 역사의 약현성당도 방문했다. 그런데 너무 춥다. 폼 내다고 너무 일찍 봄옷을 입었을까 싶다.

잔뜩 웅크리며 오는 길에 우연히 충무공 동상 앞에 차려진 세월호 기억공간과 마주쳤다. 7년 전 2014416. 476명의 국민이 침몰하는 세월호에 탔다가 수학여행 간 학생들을 포함한 304명이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희생되었던 그날, 그 분들의 영정이 한 뼘 정도의 액자에 담겨 다른 작품들과 함께 모셔져 있었다.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데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리 내외도 줄을 섰다. 긴 시간 서 있으려니 춥기는 하고 종일 걸음에 힘들었지만 별수 없다.

줄 서서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고함소리 같은게 들렸다. 오가는 차 소리와 바람 소리에 처음엔 잘 몰랐다. 그러더니 젊은 경찰들이 이리저리 뛰기 시작하고 무전기 소리가 왕왕거린다. 신경써서 듣자니 세월호를 비웃고, 죽은 영령들을 조롱하고 대통령과 정부를 비방하는 무리들이 스피커를 이용해 악을 쓴다. 급기야 경찰들이 말려도 계속한다.

그냥 악귀들이다. 앞 충무공께서는 찬 날씨에 괜한 인상만 쓰고 계실 뿐 크고 긴 칼은 뒀다 어따 쓰실련지... 나는 종종 다소 과격하고 진보적인 글을 쓰긴 하지만 비교적 평화주의자라고 자위한다또한 훌륭한 신앙인은 아니더라도 노력하는 신앙인 정도는 되지 싶은 천주교 신자다.

그러나 저런 못된 인간들. 아직도 원인과 진실규명이 되지 못한 죽음을 추념하는 장소, 추모객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와서 악다구리를 써 대는 인간들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과연 신이 무슨 소용이며 정의와 도덕과 도리 같은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말이다. 그냥 "저것들은 인간도 아니여!" 하면 끝날 일인가?

줄을 서서 앞뒤로 돌아보니 내가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저 젊은이들에게 "지금 여기서"의 이 장면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각인 되겠는가. 나는 무지하고 아둔하여 세상을 잘 모르는 편이긴 하다. 아내도 늘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하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다만 세월호가 침몰하여 왜 구조되지 못하고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나는 그것이 아직도 궁금하다.

물론 큰 배도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났더라도 그 긴 시간 지나도록 왜 구조하지 못했는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지금까지도 말이다. 세상에는 이상한 인간도 이상한 일도 여전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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