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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가신
그냥 내 이야기

천민자본주의

by 박가신 2021. 6. 22.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한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 힘 있는 사람에게는 지나친 호의나 관심이 주어지고 특히나 우호적이다. 젊어 봉급쟁이 시절을 기억해 보면 권한 있는 사람들은 늘 중앙에 앉아 좌중을 압도했었다. 그러다가 그의 말이 별로 중요하거나 심오한 말도 아닌데 사람들은 집중하고 폭소를 터트리고 공감 해 한다.

왕년에 한가락 하셨지만 중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외삼촌께서 하신 말씀이다. "내가 검,판사였더라면 있는 인연, 없는 인연 앞 세워서 내 집을 찾을 것인데 별 볼 일 없으니 만나자는 사람도 없다!" 뻔한 이야기지만 그저 뻔한 말이라고 그냥 치부하기엔 다소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랬는데 실없이 나이만 먹은 요즘엔 권한이나 권위 같은 게 별 볼 일 없어지고 딴 게 그 자릴 꽤 찬다.

""이다. 돈이 있는지 없는지의 실제 여부보다는 그 사람의 돈 씀씀이 정도라고나 할까. 동창회든 향우회나 퇴직자 모임이든 목소리가 커지고 좌중을 압도하기도 하고, 심지어 소소한 결정권을 갖기도 하다. 그러니까 월정 회비로 모여 구성원 모두 원칙적으로는 동일한 권한과 권리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솔직히 말해 그런 돈 많은 친구가 특별회비(기부)를 내는 경우도 가끔 있겠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사적으로 밥을 사거나 술을 사지도 않는데도 그렇다. 그러니 세간의 권한이나 권위가 별 볼 일 없어진 이 즈음에 딴것도 아닌 돈 좀 있는 친구들에게 기 죽어~ 하는 모습은 왜일까? 솔직히 그 돈 나누어 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할수록 쪽팔린다.

내 식으로 생각해본다. 일단 내 몸 안에 곤궁했던 경험들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찢어지게 가난에 시렸던 기억으로 그놈의 돈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 힘 또한 막강함을 오랫동안 몸소 터득한 탓이 아닐까? 오래전 환란의 시기에 강제퇴직 당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멀쩡하게 잘 굴러가던 사업장이 망해 자빠지고, 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결행하던 그 아픈 세월을 범국민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 시간에도 돈 두고 갑질하는 인간들로 인해 가슴에 얼병이 들고, 멀쩡한 형제자매 사이가 허접한 시골 논 마지기 때문에 웬수가 되는, 수없이 많은 함정과 지뢰와 폭탄과 폭격이 난무한 세상을 살다 보니 몸으로 체득된 각인이자 반작용은 아닐까?

실제로 노인 대상 강의를 볼라치면 많던 적던 유산은 절대로 일찍 주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 말이 뭔 말인가? 내 자식이든 남 자식이든 이 땅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보다는 알량한 유산에 더 가치와 비중을 둔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자식들을 탐욕스런 잠재적 불효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왜 사람의 도리나 범절에 대한 강의보다는 유산을 주지 말라는 강의가 판을 치는가 말이다. 이렇게 세상이 가르치니 우리는 그 더럽고 악취나는 ""에 기죽어~ 하고 비굴 해 진다

또 보자. 가끔 재벌가 후손들의 싸가지 없는 언행들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곤 한다. 이걸 대하면서 재벌가나 권력자 등등 힘 있는 자녀들만의 극히 일부만의 치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에겐 늘 하던 일상이던 것이 그야말로 재수 없게, 일진 사납게 노출되었을 뿐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집안이 3대를 못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생각 해 보라! 경영 마인드가 확고하고 타의 모범이 되어도 부족할 이 척박한 무한 경쟁환경 속에서, 충동적이고도 싸가지없는, 폭력적이며 상대를 무시하는 성격 구조의 오너가 과연 멀쩡히 존재할 수 있을 수 있겠는가!. 지난 시절 권력자에게 뒷돈 찔러주던 그때, 장이 끓는지 국이 끓는지 보통 사람들은 통 모르던 그때, 심지어 북한에 총 쏴주라고 돈 주던 모두가 배곯아 먹고살기 바쁜 시절 아니다. 지금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파트 값에 연연하는 젊은 친구들이 안타깝다. 물론 지금 당장 힘들고, 남들과 비교하면 속상하고, 나만 무능해 보이고, 언제나 극복할까~ 하는 그런 감정 이해한다. 다만 그거 너무 중하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물론 자기 집 중요하긴 하지만 살다 보면 인생에서 집을 소유하고 안 하고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내 나이 되고 보니 집이 있고 없고, 사는 곳이 얼마짜리냐고 아무도, 진짜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미 지나쳤으니 그런 말 한다며 고깝게 생각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겠다. (? 내 집 마련할 때까지 일곱 번 이사 한 경험자다.)

그보다 더 소중하고 더 아깝고 더 필요한 것이 분명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이 보인다. 한 달에 백만원씩 적금하면 1년에 천이백만원이고 그걸 10년 하면 12천만원이다. 한 달에 2백만원으로 두배를 했다고 해도 10년에 25천일터, 당장 수도권에 크던 작던 3억 미만 아파트 있는가? 얼마 버는지 모르겠지만 결혼해서 10~20년 모아 봉급쟁이가 집 장만했다면 이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그러니 아파트 못 샀다고 쪽팔릴 것도 없고 기 죽지도 말 것이며 속상해 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거대 부동산업자와 건설업체와 그리고 젊은이들 딴 생각 못하게 할 악의적 집단의 음모가 존재할 수 있으니.

갑자기 "천민 자본주의"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 조상도 천민일 수 있으니 이 말 싫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천민자본주의의 덫에 빠져들고 있지는 않나 싶다. 여차하면 그리될 것이다. 우리 이제 아파트에 관한 한 가치관을 통째로 바꿀 시기가 온 듯하다.

나야 이제 갈 사람이지만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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